형사소송 – IT의 무덤 (2)

변호인이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을 ‘방어’(변호)하기 위해서는 공소를 제기한 검사가 피고인을 ‘공격’(처벌해달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수사 기록을 확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래 링크 참고).

형사소송 – IT의 무덤 (1)

 

변호인은 형사 사건의 검사 수사 기록을 어떻게 얻을까요?

객관식 문제처럼 보기를 들겠습니다.

 

  1. 검사가 변호인에게 (종이) 수사 기록의 복사본을 준다.
  2. 검사가 수사 기록 파일(컴퓨터 파일)을 변호인에게 이메일 등으로 보내 준다.
  3. 변호인이 검사의 (종이) 수사 기록을 직접 복사한 후 그 복사본을 가져 간다.
  4. 법원이 검사가 제출한 (종이) 수사 기록을 복사하여 그 복사본을 변호인에게 준다.

 

정답은 3번입니다.

사전에 열람 및 복사 신청하여 예약된 일시에 검찰을 방문한 변호인은 수사 기록 원본을 복사한 후 복사본을 가져오게 됩니다.

 

‘변호인이 수사 기록 원본을 복사한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 한 문장에 IT의 무덤이 존재합니다.

도대체 어떻길래 종이를 복사하는 간단한 과정에 IT의 무덤이 있을까요?

 

일단, 수사 기록의 양이 상당히 많습니다.

기록의 양이 수백 장에서 수천 장에 이릅니다.

참고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공판과 관련된 검사의 수사 기록이 12만 장 정도 된다고 합니다.

 

기록의 양이 많더라도 복사기의 ADF(Automatic Document Feeder)를 이용하여 자동 복사를 할 수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형사소송에 대해 ‘IT의 무덤’이라는 말을 쓰지도 않았겠지요.

 

‘IT의 무덤’이라는 어구에 걸맞게 자동 복사, 당연히 안됩니다.

자동 복사가 되지 않는 이유는 수사 기록의 물리적 구조 및 검찰의 통제(?) 때문입니다.

 

수사 기록은 아래와 같이 생겼습니다.

수사 기록의 물리적 형태

 

문서 위에 까만 줄 같은 것이 ‘철끈’입니다. 서류 뭉치에 구멍을 뚫어서 철끈으로 묶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원고지 등을 철끈으로 묶어서 사용해 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 서류를 철끈으로 묶어서 관리하는 것은 70 – 80년대에 많이 쓰였던 방법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식(old-fashioned) 서류 관리법이 현재 대한민국 검찰에서도 여전히 쓰이고 있는 것이죠.

 

위 그림과 같은 서류를 ‘철끈’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은 채로 두꺼운 수사기록 뭉치(위 그림의 빨간색 부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일일이 복사해야 합니다. 검찰이 수사 기록을 복사할 때 ‘철끈’을 분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그려졌던 30년 후의 미래였던 2015년 10월 21일이 2년 이상 훌쩍 지났을 뿐더러 만화 ‘2020원더키디’의 2020년이 2년 앞으로 다가온 2018년 7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철끈’을 완전히 분리하지 못한 채로 수백 장이 넘는 종이 서류를 (길게는) 2~3일 동안 꼬박 복사해야 검사의 수사 기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사 기록을 직접 복사해 본 경험이 있었는데, 몇 시간 동안 두꺼운 수사 기록을 한 장씩 넘기며 복사하고 있으니 ‘도대체 내가 여기서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더군요.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을 변호할 때 변호사인 제게 가장 어려운 일은 단연코 수사 기록의 복사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검찰 혁신’이 정부의 주요 이슈 중의 하나인데, 검찰의 위로부터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검사 수사 기록 복사’와 같은 사소하지만 국민에게는 중요한 이러한 아래에서부터의 혁신 역시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일반 국민들이 이러한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정부에게 개선을 요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말도 안되는 수사 기록 복사 방식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전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변호인 선임 비용의 상승 등). 저는 이러한 엄청난 구시대적이고 국민(또는 변호인) unfriendly한 방식의 수사 기록 복사 방법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수사 기록 복사 얘기로 돌아와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오랜 시간(몇 시간 내지 며칠)동안 복사하는 것으로 일이 끝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정도로 끝난다면 ‘IT의 무덤’이 아닙니다.

복사 후의 일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쓰겠습니다.


태그: , , ,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 양식 변경(from 2018. 7. 6.)

2018. 7. 6.부터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가 기존의 가로 양식에서 세로 양식으로 바뀝니다.

기존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는 아래와 같았는데

가로 양식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

 2018. 7. 6.부터 발급되는 부동산 등기사항증명서는 세로 양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가로 양식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세로 양식은 약간 어색해 보이긴 합니다만 실용성 측면에서는 세로 양식이 더 좋을 듯 합니다.

금방 익숙해지겠지요.


태그: , , , , , ,

형사소송 – IT의 무덤 (1)

형사(刑事, criminal case)는 범죄와 그 처벌과 관련된 일입니다.

경찰, 검찰이 범죄 혐의 및 범죄자를 인지하게 되면 그 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수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수사 과정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기소(공소제기)를 하게 되면, 검사 vs 피고인 형태의 대립 구도를 갖는 형사재판(형사소송)이 열리게 되고

그 재판에서 법관이 유죄 여부 및 형량을 판단하게 됩니다(아래 링크의 형사 (刑事, criminal case) 부분 참고).

위와 같은 재판에서 피고인은 자신을 변호해 줄 변호인을 선임하여 형사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PRACTICES

 

형사소송에서 법관은 (크게 분류할 때) 아래의 3가지(개인적 기준에 의한 구분임) 자료를 가지고 판결을 하게 됩니다.

  •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만든 자료
  • 피고인(+변호인) 제출 자료
  • 법정에서의 증인신문, 피고인신문 등의 과정에서 형성된 법관의 자유심증

 

위 자료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자료는 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만든 자료, 즉 수사 기록입니다.

변호인은 검사의 수사 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후 피고인을 위한 변론 전략을 수립하게 됩니다.

 

변호인은 변론을 위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검사의 수사 기록을 어떻게 확보할까요?

검사의 수사 기록을 확보하는 이 기초적인 과정에서 IT(Information Technology)의 무덤이 시작됩니다.

‘IT’라는 말을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IT’보다 낮은 수준의 기술조차

사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호인의 검사의 수사 기록 확보 과정은 중세시대의 ‘가내 수공업’ 수준이라 묘사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변호인의 검사 수사 기록 확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전자소송 – ‘IT로 하는 재판’의 대표

‘소송은 서면 제출이 연속되는 과정이다’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소송 중 서면 제출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민사소송의 경우, 원고와 피고는 소장, 준비서면 등의 서면과 서증 등을,

형사소송의 경우, 검사와 피고인은 공소장, 변론요지서 등의 서면을,

법원에 제출합니다. 위와 같은 주장과 관련된 서면과 더불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서증의 제출도 필요합니다.

 

서면 제출 방법은 아래의 4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생각’만 해 볼 수 있을 뿐 실제 소송과 관련된 서면 제출에서 아래의 4가지 방법이 다 통용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 법원을 방문하여 직접 제출
  • 우편 제출
  • 팩스 제출
  •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 제출

법원을 방문하여 직접 제출하는 것은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많은 classical한 방법입니다.

우편 제출은 법원 방문 제출보다는 공간적 제약을 완화해 주지만 여전히 시간적 제약(우체국이 문 열때만 제출할 수 있고, 우편 배달에

다소 시간이 소요됨)이 있습니다.

시공간적 제약의 측면에서 볼 때 위 4가지 방법 중 팩스, 인터넷 제출이 더 좋은 방법이고, 둘 중에서도 실제 종이 서류 없이 전자 파일로

서면 제출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하고 편리한 여러 IT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인터넷 전자 제출이

사용자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제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가장 좋은 서면 제출 방법인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 제출은  ‘전자소송’ 사이트가 생김으로써 가능해졌습니다.

법원이 IT기술을 활용하여 인터넷을 통한 서면 제출을 가능하게 한 점은 정말로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서면 제출 뿐 아니라 소송의 상대방이 법원에 제출한 문서도 전자소송 사이트를 통해 받아볼 수 있어서 소송 대리 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 입장에서는

전자소송 사이트가 매우 기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자소송 사이트에는 아쉬운 점(즉, 개선했으면 하는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소송에서 서면을 전자적으로 제출할 수  있게 한 것은 좋으나, 요즘의 cutting-edge IT기술이 적용된 다른 웹 사이트와 비교해 본다면

아주 기본적인 측면에서부터 그 수준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5년에 제가 전자소송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간략히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때보다 조금 발전하기는 했지만 아직 갈 길은 너무나도 먼데 발전 속도는 너무나도 느립니다.

전자소송

그리고 전자소송에는 중요한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형사소송입니다.

형사소송의 경우 전자소송 사이트를 이용하여 전자적 서면 제출 및 수령을 할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의 형사소송은 IT기술의 무덤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매우 많으므로 추후 별도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언론이나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종 SNS 등에서 법원이나 법원 관계자가 4차 산업 혁명, AI 등의 기술을 재판 등 법무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 언급할 때

항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전자소송 사이트 또는 기타 법 관련 사이트 내에서 할 수 있는 기본적인 IT기술부터 제대로 적용하고 나서 4차 산업 혁명이니 AI 등을 고려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입니다.